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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아우디

아우디
( Audi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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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개요


아우디는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 아우디가 통합해 1932년 '아우토 우니온'으로 출범했다. 최근 유럽에서 A6와 A3가 인기를 누리고 있고 판매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서는 등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다. 군소 메이커 4개를 통합해 성장을 거듭한 아우디는 한 때 벤츠에 인수되기도 했지만 64년 폴크스바겐에 합병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안전성과 내구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네 개의 고리를 1열로 연결한 모양인 아우디 엠블렘은 메이커의 탄생 스토리와 관계가 깊다. 단순함을 보여주는 동그라미 4개. 어떤 이들은 자동차 수레 바퀴수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동그라미 4개는 각각의 자동차 회사를 의미한다.  '진보와 신기술'의 상징적 메이커 아우디는 원래 독일 삭소니 지방에 있던 4개의 군소 메이커가 연합해 만든 회사로 아우디(Audi), 반더러(Wanderer), 호르히(Horch), 데카베(DKW)가 합병되어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이란 단일 회사로 1932년 설립되었다. 즉 네 개의 고리는 4개 메이커의 결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폴크스바겐에 흡수되어 브랜드 이름을 부르기 쉬운 아우디로 바꾸었지만 엠블렘만은 아우토 우니온 시절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아우디는 97년에 처음으로 판매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섰다. 새로 나온 뉴 A6와 A3가 높은 인기를 누렸고 A8도 판매기록을 경신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모델인 A4의 인기도 여젼했다. 매출액은 96년에 비해 19.2% 증가한 224억 마르크(22조 4천억원)를 올렸으며 11억 마르크(1조 1천억 원)의 세전이익을 기록했다.

아우디는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에, 다른 차처럼 뒤꽁무니에 씌어 있는
이름을 보아야만 '아, 아우디구나.'하고 알 수 있는 차가 아니다. 날씬한 몸매와 시원하게 뻗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아우디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도 꽉 차고 알찬 차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우디는 벤츠나 BMW와 맞먹는 전문가들 사이에 서는 매우 인기 있는 독일의 명차다. 특히 네 바퀴 굴림차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또 아우디는 지프나 군용차에서만 사용하던 네바퀴 굴림 방식을 세계 최초로 일반 승용차에 사용했는데, 그것은 1980년대의 일이었다. 그 전에도 물론 네 바퀴 굴림차가 있었지만, 그것은 보통 때는 두 바퀴 굴림으로 가다가, 눈이 오거나 차바퀴가 웅덩이에 빠졌을때 또는 비포장 도로에서 고생할 때만 잠깐동안 기어를 작동시켜 네 바퀴 굴림으로 바꾸었을 뿐이었다. 지금 현재 아우디와 맞먹는 네 바퀴 굴림 승용차로는 미국 크라이슬러의 이글이나 일본의 레오네 같은 승용차가 있다.

아우디는 네 바퀴 굴림을 처음으로 일반 승용차에 사용해 네 바퀴 굴림차 붐을 일으켰는가 하면, 안전도도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보통 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운전하는 사람은 핸들에 가슴을 박게 되는데, 이때 충격을 덜어 주기 위해 웬만한 차에는 에어백이 달려 있다. 하지만 아우디의 안전 장치는 에어 백 뿐만이 아니다. 사고가 나면 핸들은 앞으로 쑥 들어가고, 안전벨트는 뒤로 바짝 당겨져, 운전자가 핸들에 가슴을 부딪치더라더 충격을 훨씬 덜 받는다. 안전장치가 이중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의 안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브레이크인데, 데부분의 고급차에는 ABS시스템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아우디의 ABS는 일 초에 열두 번 이상 작동하게 되어있어, 다른 차보다 훨씬 빨리 멈춘다. 브레이크를 밟은 후에 차가 100m 를 가서 멈춘다면, 아우디는 75m만에 가뿐히 멈춘다.
 

회사 연혁


자동차 회사들은 대개 그 회사를 세운 사람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아우디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회사를 세운 사람과 전혀 상관없는 것도 아니다. 아우디를 처음 세운 사람은 독일사람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박사다. 호르히 박사는 그 당시 자동차 기술의 선구자들 중 한 사람으로, 포르쉐 박사 못지않게 자동차 기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호르히는, 차를 많이 팔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 경주에 참가해 우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동차 경주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호르히 박사가 몸 담고 있던 벤츠 사는 그때만 해도 자동차 경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호르히 박사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벤츠사를 떠나 189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호르히'라는 새로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1901년 '호르히 4'라는 후륜구동방식의 차를 완성시켰다. 당시에 체인이나 벨트로 차를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엔진을 앞쪽에 얹고 샤프트로 뒷바퀴에 구동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호르히는 1호차에 이어 1904년 4기통 레이싱카를 만들어 헤르코마 경주에서 벤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함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호르히 박사는 뛰어난 자동차 기술자였을 뿐, 회사를 이끌어 가는데는 별로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동업자들이 자동차 경주에만 열을 올리는 호르히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호르히는 자신이 세운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호르히는 실망하지 않고 또 다른 회사를 세웠다. 자신의 이름은 이전의 회사 이름으로 벌써 사용했기 때문에, 호르히는 자기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회렌'이라는 단어를 회사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회렌은 '듣다'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아우디'가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의 '오디오'라는 말도 이 아우디에서 나온 것이다. 

아우디가 처음 만든 차는 1910년에 선보인 아우디 A타입이었으나  아우디란 공식적인 이름을 달고 나온 첫차는 1910년에 탄생한 B10/28이었다. 직렬 4기통 2,612cc 28마력엔진으로 OHV 흡기밸브와 사이드 배기밸브를 가진 독특한 방식의 이 자동차는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경주, 알펜 트라이얼에 출전하여 호르히박사가 직접 운전해 우승했고, 다음 해에 나온 C형도 알펜 트라이얼에서 우승했다. C형에는 그때부터 '알펜 지거'(알프스의 승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차는 1912년에서 1914년까지 3연패의 신화를 남겼다.
또 B10/28을 베이스로 한 모델들인 D,E,G와 1922년에는 K, 1924년에는 M시리즈가 개발되었고, 4기통에서 6기통으로 다시 8기통엔진을 탑재한 '임페라토어'까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우디의 역사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회사들과 합쳐지기도 하고, 주인이 계속 바뀌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아우디는 한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한 길을 걸어 왔다. 아우디와 관계를 맺지 않은 독일의 자동차 회사는 BMW 하나뿐인 걸로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아우디의 수난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갑작스럽게 경제 불황이 밀어닥친 데다가, 미국의 쟁쟁한 자동차 회사들이 유럽으로 몰려들면서 아우디뿐 아니라 독일의 자동차 회사 모두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아우디는 반더러, 호르히, 데카베와 회사를 합쳐 살 길을 찾으려 했다.  네개의 동그라미가 사슬처럼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는 아우디 엠블럼은 아우디를 포함한 이들 네 회사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4개사의 합병으로 인해 아우디가 가지고 있던 자동차의 이미지는 많은 변화를 보였다.  아우토 우니온은 1933년 첫번째 모델로 데카베의 앞바퀴 굴림방식, 반더러의 엔진, 호르히의 차체 등 여러 회사의 전통을 한데 모아 만든 '아우디 프론트'를 선보이면서 아우디의 역사를 열었다.

1933년에 출시한 '아우디225'는 2,300cc V6를 심장으로 채택, 앞바퀴굴림방식을 적용 하였다.  이후 1938년에는 최고속도 137km/h까지 주행할 수 있는 고성능 자동차인 '920'이 개발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세계대전후 서독의 뒤셀도르프로 자리를 옮긴 아우디는 1949년 오토바이를 생산으로 기술적인 바탕을 새롭게 잡기 시작하였다.

1954년에 아우디는 그리고 1954년에는 독일 최초의 자동클러치 작소마트(Saxomat)를 개발하고
비포장도로에 적합한 네바퀴 굴림 자동차인 '뭉가'를 개발하였다. 뭉가는 아우디 콰트로의 기초가 된 모델로 1956년부터 1968년까지 생산되었다. '뭉가'를 개발하면서 재기하는 듯 보였으나, 빈약한 자본과 시장경제의 어려움으로 1956년 벤츠의 산하에 들어 갔다가 1964년에는 폴크스바겐에 합쳐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아우디는 커다란 수확을 하나 거두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 회사들의 앞선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벤츠 다음 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아우디는 1931년에 세계 최초로 앞바퀴 굴림차를 개발했을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다. 더 빠르고 안전한 기술의 아우디 겉으로 보기엔 그리 특별한 것도 없는 이 차를 자동차광들이 좋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보 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우디를 보통 '기술의 아우디' 라고 부른다.  

폴크스바겐의 산하로 들어간 아우디는 1965년에 1,969cc의 아우디72를 시작으로 100, 60, 75, 80, 90 시리즈로 라인업되면서 아우디는 다시 황금기를 맞게 된다.  또 아우디의 기술이 가장 많은 변모를 보인 기간은 1968년에서 1972년까지로 1969년에는 NSU사와 다시 합병하였고, 1972년에는 FF방식 소형자동차 '아우디80'의 개발로 아우디 기술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77년에는 '아우디100'을, 이후 V8형태의 아우디를 생산하였다.  아우디 80, 100 모델의 개발은 앞바퀴굴림방식과 현대적 4기통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였고 이후 아우디 모델의 기초가 되었다. 또 4기통 앞바퀴 굴림의 80시리즈는 크게 히트하면서 그래 '카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아우디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또하나의 기술은 승용차에 4WD방식을 쓴 것이다. 70년대만 해도 2.0l 미만의 소형차만 만들던 아우디는 작은 차로도 아우토반에서 벤츠나 BMW와 겨룰 수 있는 고성능차 만들기에 열중했다. 75년부터 개발된 콰트로 방식은 80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마침내 풀타임 4WD 방식을 쓴 아우디 콰트로가 선보이며 빛을 보게 된다. 아우디 콰트로는 80시리즈를 기본으로 직렬 5기통 2.1l 터보 160마력 엔진을 얹었다. 그 결과 가속성과 코너링 성능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빗길과 눈길에서도 안정된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아우디 콰트로는 80년대 중반 WRC에서 각종 타이틀을 휩쓸면서 아우디의 명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아우디는 94년에 전차종에 걸쳐 모델체인지를 했다. 아우디 80은 A4, 아우디 100은 A6, V8은 A8로 모델명을 바꾸면서 새롭게 단장되었다. 97년에는 뉴 A6가 발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우디는 독일 이외에 중국, 헝가리, 인도네시아 등지에 있는 협력 파트너와 함께 차를 만들고 있으며 99년에는 브라질에 A3 공장을 지었다. 작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는 소형차로는 처음으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ASF)를 이용한 A2를 발표하면서 앞선 기술을 과시했다. 아우디 콰트로와 아우디 A8이 '20세기 최고의 명차 후보 100대'에 선정되는 등 아우디의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AUDI FAMILY TREE

 

사업내용과 특기사항


[사업내용]

폴크스바겐은 배기량 2.0ℓ이하 소형차와 소.중형상용차르 생산하고, 아우디는 2.0ℓ부터 3.6ℓ까지의 중.대형차를 생산한다.
유럽 고급차시장(아우디, 벤츠, BMW, 볼보, 사브 등)에서 15%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우디는 모터 스포츠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르망의 대회규정이 GT보다 LMP에 유리하게 바뀌자 닛산, 아우디 등이 새로 참가하는 경향이다. 아우디의 경주차 R8은 V8 3.6ℓDOHC 트윈터보 엔진을 얹어 BMW의 경주차 르망 로드스터(LMR) 등과 경주했다.

[국내 사업내용]

아우디는 1987년 효성이 판매권을 따내면서 국내시장에 상륙했다. 이 때 폴크스바겐도 함께 들여왔다. 수입차시장 개방 초기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으나 지금은 벤츠, BMW에 뒤지지 않는 품질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1996년에는 아우디 그룹이 폴크스바겐과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움에 따라 효성물산도 아우디 판매량을 크게 늘렸다. 그러나 1997년말 불어닥친 'IMF 한파'로 수입차시장이 위축되어 당분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논현동 폴크스바겐 전시장을 청담동 아우디 매장으로 통합시켰다.
아우디는 1987~1993년 우리 나라에서 158대가 팔려 부진했지만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났다. 95년에는 아우디 본사로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 최우수 판매성장상을 받기도 했다. 수입차 전체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1997년에 409대가 팔린 이후로는 최근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홍보부족과 인지도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최근에는 TT 로드스터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고속으로 코너링할 때 차체가 불안해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TT의 안전성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차체를 보강해서 문제점을 바로 잡기는 했지만 아우디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아우디는 독특한 매력으로 꾸준히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최초의 승용 4WD인 아우디 콰트로를 비롯해 알루미늄 섀시를 쓴 A8과 A2 등 신기술 개발에도 앞서가고 있다. 이런 아우디의 좋은 이미지 때문에 국내 판매권을 놓고 많은 업체가 경합을 벌였고 결국 고진 코리아로 결정되었다. 알프스 모터스로 BMW를 판매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우디, 폴크스바겐의 개성을 집중적으로 홍보한다는 전략이다. 


◆ 작성일자 : 2001. 10. 30
◆ 자료출처 : 1. 수입자동차 모터쇼 자료(http://www.importcar.co.kr)
                    2. 기타 웹검색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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